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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경기가 어렵다는 말을 방패 삼아 스스로에게 이 말을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쥔 《일본전산 이야기》는 그 핑계를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세 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출발해 50년도 안 돼 매출 16조 원, 직원 13만 명의 세계적 기업이 된 일본전산의 이야기는 대단한 기술이 아닌 '될 때까지 한다'는 집요한 실행력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불가능한 주문을 받아 든 회사의 실행력
일반적으로 불황기에 살아남는 기업은 '원가 절감'과 '리스크 회피'에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전산의 초창기 사례를 읽으면서 느낀 건 정반대였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남들이 고개를 젓는 가장 까다로운 주문에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대기업 개발 부서 담당자가 반쯤 비웃는 투로 던진 조건이 있었습니다. 모터 부피를 3개월 안에 절반으로 줄여오면 발주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숫자였고, 당연히 못 할 거라는 전제가 깔린 제안이었습니다. 일본전산은 그 주문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절반이 아닌 18% 축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기업 담당자의 반응은 "우리 같은 곳도 못 한 걸 어떻게 줄여왔냐"였고, 그 자리에서 첫 발주가 성사됩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건 숫자가 아닙니다. '목표치에 미달했지만 가장 많이 시도한 쪽이 이겼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일본전산이 초기부터 지켜온 핵심 원칙인 즉시 실행(Immediate Execution) 전략의 실체입니다. 즉시 실행이란 결과를 보장받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창업 1년 차 목표가 '남들보다 2배 더 일하자'였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목표를 설정했고, 그것을 달성한 뒤에야 다음 목표로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그건 그 시대 얘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업무에서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한 경우가 훨씬 많았고, 어설프게라도 먼저 시작한 쪽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걸 얻었습니다. 일본전산의 사례는 그 경험을 데이터로 확인시켜 준 느낌이었습니다.
- 창업 첫해 목표: 남들보다 2배 더 일한다
- 두 번째 목표: 전원 영업, 전원 개발
- 이후 순서: 해외 수출 → 자체 공장 보유 → 공채 신입 채용 → 대기업으로부터 배운다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은 인재육성 철학
인재육성 하면 보통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이나 공채 필기 점수를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전산의 초창기 채용 기준을 보고 잠시 멈췄습니다. 밥 빨리 먹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 화장실 청소 잘하는 사람, 오래 달리기 잘하는 사람. 이게 전부였습니다.
처음엔 황당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은 결단이 빠르고 행동도 빠릅니다. 화장실 청소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남들이 꺼리는 일도 서슴없이 해냅니다. 이 철학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인재는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원칙을 제 경험에 비춰보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에서 성과를 낸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입사 당시 스펙이 뛰어났던 사람보다 기본기를 끝까지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일본전산이 말하는 기본기 중심 인재상(Talent Development Philosophy)이란, 타고난 능력보다 지속 가능한 태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방식입니다. 이 철학이 조직 전체에 내재화되면 구성원들은 '나는 능력이 없어서 안 된다'가 아니라 '나는 아직 안 했을 뿐이다'는 태도로 일을 대하게 됩니다.
일본전산의 영업 방식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객을 설득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말하는 것을 빠짐없이 받아 적고 돌아와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영업이었습니다. 혼자 안 되면 둘이, 둘이 안 되면 셋이 붙어서라도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했습니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열정(Passion)의 문제라고 나가모리 사장은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지속적 의지를 뜻합니다.
나가모리 사장의 '호통 경영'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잘못을 발견한 그 자리에서 즉시, 강하게 지적하는 방식입니다. 지나치는 것이 관대함이 아니라 열정의 부재라는 시각이 흥미로웠습니다. 작은 실수를 그냥 넘기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업무에서 겪어보니, 초반에 사소한 기준을 타협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가서는 아무도 그 기준을 지키지 않게 되더라고요.
청소 한 번으로 적자 기업을 흑자로 바꾼 M&A 전략
일반적으로 M&A(인수합병)는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이 뒤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M&A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두 기업이 합쳐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사례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감축이 우선순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제가 일본전산의 M&A 방식을 읽으면서 느낀 건 완전히 달랐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이 인수한 기업에 가서 제시한 조건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결근하지 말 것, 맡은 일을 끝까지 할 것. 인원 감축도, 사업 정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만으로 만성 적자 기업들이 인수 당해에 흑자로 전환됐습니다.
오르골 시장 세계 점유율 90%를 자랑하다 연간 2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던 산쿄전기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교토에서 나가노까지 400km를 매주 직접 출근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현장에 섰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청소였습니다. 주변 정리부터 했습니다. 리더가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본 직원들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회사 회생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이것이 일본전산이 말하는 턴어라운드(Turnaround) 전략의 본질입니다. 턴어라운드란 적자 상태의 기업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경영 회생 과정을 뜻합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정리정돈, 청결, 예의범절 같은 기본 소양이 갖춰진 조직은 반드시 흑자로 돌아선다고 확신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시기에 저를 먼저 움직이게 한 것도 책상 위 서류 한 무더기를 치우는 아주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의식이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여야 의식이 바뀐다는 나가모리 사장의 말이 그래서 더 와닿았습니다.
실제로 일본전산은 현재 계열사 440개, 직원 13만 명 규모로 성장해 있으며, 세계 모터 시장에서 초소형부터 초대형까지 전 영역을 커버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출처: Nidec Corporation 공식 사이트). 이 성장의 상당 부분이 인원 감축 없는 M&A 전략으로 쌓아올린 것이라는 점은, 단기 실적만을 쫓는 일반적인 M&A 공식과 확연히 구분됩니다.
경영학 연구에서도 문화적 통합(Cultural Integration)을 중시하는 M&A가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문화적 통합이란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조직 문화를 강제로 바꾸지 않고 서로의 강점을 살리며 결합하는 방식입니다(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일본전산의 방식은 수십 년 전에 이미 그 결론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본전산 이야기 책, 지금 읽어도 도움이 될까요?
A. 2009년 출판된 책이라 수치는 낡았지만, 경영 철학의 본질은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실행력과 기본기를 다시 다잡고 싶을 때 이 책만큼 선명하게 각성을 주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무기력증이 찾아올 때 꺼내 읽기에 좋습니다.
Q. 나가모리 사장의 호통 경영, 요즘 시대에도 통할까요?
A. 호통 자체를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핵심은 잘못을 발견했을 때 지나치지 않고 즉시 피드백하는 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강한 피드백은 구성원을 위축시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기준 없이 넘어가는 조직일수록 결국 모두가 방향을 잃었습니다. 방식보다 일관된 기준과 관심이 중요합니다.
Q. 일본전산이 M&A 후 인원 감축 없이 흑자 전환한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A.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실제로 기록된 것들입니다. 산쿄전기처럼 연간 200억 엔 적자 기업도 인수 당해 흑자로 전환됐습니다. 비결은 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리더가 현장에서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거창한 구조조정보다 기본 소양 회복이 먼저라는 점이 일본전산 M&A 방식의 핵심입니다.
Q. 밥 빨리 먹는 사람 뽑는 채용 방식, 지금도 일본전산이 쓰나요?
A. 창업 초기의 방식이라 현재는 다른 채용 체계를 운영합니다. 실제로 일본전산 간부들이 "우리는 대부분 밥 빨리 먹어서 뽑힌 사람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한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될 정도로, 지금은 그 시절의 상징적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기본기와 태도를 인재 기준으로 삼는다는 철학 자체는 지금도 유효해 보입니다.
결론
《일본전산 이야기》를 덮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상 위를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딘가 거창하게 각오를 다지거나 목표를 세우기 전에, 그냥 몸부터 움직였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이 말한 대로 의식은 몸이 움직인 뒤에 따라왔습니다.
이 책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헌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Z세대가 중시하는 일과 삶의 균형과는 결이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점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안 되는 이유를 증명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될 때까지 방법을 찾고 있는가.' 무기력증이 찾아오거나 핑계가 쌓여가는 시기에 이 책을 한 번쯤 펼쳐보시길 권합니다.